역사이야기

원나라의 고려 내정간섭

☆★☆★☆★. 2020. 8. 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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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의 고려 내정간섭

1231년 몽골의 고려 침공으로 시작된 30년간의 여몽전쟁 끝에 고려는 1259년 몽골과 강화를 맺어 1356년 공민왕의 반원 운동으로 고려가 원(몽골족이 세운 왕조)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때까지 원의 간섭을 받았다.

일반적으로는 고려가 몽골과 강화를 맺은 1259년에서 1356년까지 97년의 시기를 원 간섭기라고 한다.

무려 원나라가 고려를 97년 동안 간섭했던 것이다.

 

원 간섭기에 고려는 왕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원의 간섭을 받게 되어 자주성을 크게 잃었다.

우선 고려 영토 안에 쌍성 총 관부(1258년~1356년), 동녕부(1270년~1290년), 탐라 총 관부(1273년~1301년)등 원의 지방청이 설립되면서 영토의 일부를 상실했다. 쌍성 총관부는 철령 북쪽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함경남도에 세운 것이고 동녕부는 자비령 북쪽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서경에 세운 것이고, 탐라 총관부는 제주도를 지배하기 위해 제주도에 설치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이 오인하는 게 있다. 제주도에서 말을 키우는 농장들이 많고, 승마체험이 마치 관광지로 유명한데 이것이 제주도의 고유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산이다. 원 간섭기 때 제주도에 탐라 총관부가 설립되면서 원나라의 문화가 제주도에 그대로 유입이 된 것이다. 제주도가 몽골 기병부대의 핵심인 말을 키우기에 적합한 기후였었다고 한다. 참.. 슬픈 역사다. 우리나라의 특별자치도시를 하나의 목장처럼 사용한 것이다.

원나라 고려 내정간섭 이유

 

세계 최강대국 몽골은 수많은 나라를 제압했지만 고려만큼은 제압을 못했다. 그래서 완전히 제압은 못할 것 같으니 내정간섭을 하여 고려의 수치심을 다 보여주게 한 후 고려를 멸망시키려고 했다.

이 시기 고려의 왕자들은 충렬왕을 시작으로 어려서부터 원에 가서 살다가 원의 공주에게 장가를 들어야했다. 원의 문화와 풍습을 강제로 익히는 것이다. 마치 고려의 왕자들을 몽골에 인질처럼 잡아두고 완전히 몽골인으로 정체성을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원은 고려왕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을 강요했고, 그 의미로 왕의 이름 앞에 '충'자를 붙였다. 사실 왕의 이름에 '충'자로 붙이는 것만큼 비참한 건 없다. 왕은 충성을 '받는' 사람이지 충성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고려가 원에게 충성을 하라는 의미로 '충'자로 왕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 때 왕의 이름은 죄다 '충'자가 들어갔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참 비극적이다. 얼마나 고려가 자존심 상하고 수치스러웠을지 짐작이 간다. 몽골은 고려를 마치 자신의 신하인 것처럼, 관제를 개편했다. 부마국 지위로. 고려 국왕+원나라 공주 형식으로.

원나라는 고려의 왕이 마음에 안들면 입맛대로 바꾸었다고 한다. 힘이 없었던 고려왕들은 순순히 물러났다고 한다. 참 이런 거 보면 얼마나 수치스러운 지.. 중세시대 때 가장 수치스러웠던 역사는 바로 원의 내정 간섭기가 아닐까 싶다.

 

정동행성이란

동쪽을 정벌하는 기구, 정동행성 설치 (충렬왕 6년, 1280년)

충렬왕은 일본정복에 도움을 받기 위해 원나라에게 도움을 달라고 했고, 원나라는 고려의 수도(서경)에 정동행성을 설치했다. 고려 국왕(충렬왕)이 정동행성 승상(최고 관직)을 겸직했지만 사실상 결정권은 원나라에 있다고 봐야 했다. 정동행성이란 동쪽을 정벌하는 기구라는 뜻인데, 그 당시 동쪽은 일본을 의미했다. 일본까지 복속하여 동아시아 지역을 모두 정복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원정은 실패했다. 당시 두 차례로 강한 태풍이 불어서 원정군들이 바다에 빠져 익사했기 때문이다.

 

헐.. 세계최강 몽골군을 하늘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엉뚱하게도 일본인들은 두 차례나 태풍으로 죽어간 당시 세계 최강 몽골인들을 보며 자신들이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즉, 바람이 자기들을 지켜줬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일본인들의 사기를 높여준 거나 다름이 없다; 참 재미있다 역사는.

 

끝나지 않았던 원의 내정간섭

원나라는 정동행성을 설치한 것도 모자라 고려에게 예쁜 처녀들을 자기네 나라로 보내라고 시켰다. 그리고 그들을 마음껏 부려먹었다고 한다. 이를 공녀라고 한다. 공녀는 원의 왕실이나 귀족 집안에 하녀가 되어 살림을 도맡아 했고 지배층의 와이프나 세컨드 아내가 되기도 했다. 진짜 수치스럽다ㅠㅠㅠㅠ 어리고 이쁜 공녀들 길들이기에 재미 들린 원나라는 더 많은 수의 공녀를 요구했고.. 급기야 고려는 '결혼 도감'이라는 기구까지 만들어서 처녀를 공개모집까지 했다고 한다;;; 와 진짜 이 시기 백성들이 얼마나 노했을지.. 나 같아도 이런 나라에서 살기 싫을 듯하다.

원나라가 간섭하면서 고려의 관제는 격하되었다. 중서문하성과 상서성(2성)을 합쳐서 첨의부라고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전리사, 군부사, 판도사, 전법사)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되었다. 제왕적 호칭은 제후국 호칭으로 격하되었다. 참 이 시기는 참으로 비참했던 고려사인 것 같다.

 

몽골과의 전쟁 원의 내정간섭

몽골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고려의 군사력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섣불리 침략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몽골과 거란의 전쟁에서 거란이 강동으로 피난을 오게 됩니다. 그때 고려는 거란이 고려를 침략한다고 생각하고 몽골과 연합해 거란을 물리치게 됩니다. 고려가 거란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몽골은 고려의 군사력이 약하다는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몽골은 고려를 얕보게 되죠. 그리고는 강동전투에서 자신들이 고려를 도와줬다며 무리한 조공을 요구하게 되고 그로인해 고려와 몽골은 관계가 악화됩니다.

 

몽골의 1차 침입은 고려로 온 몽골의 사신이 국경 부근에서 살해가 된것이 원인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사신을 살해한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당시 몽골은 고려인이 몽골 사신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침입을 하게 됩니다. 1차 침입때에는 '박서'가 저항도 하지만 결국엔 다루가치라는 감시기구가 고려에 설치되게 됩니다.

몽골의 2차 침입은 몽골의 무리한 조공요구가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때 왕과 고위 관리들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피신을 가게 됩니다. 결국엔 남아있는 백성들이 몽골군과 전쟁하게 됩니다. 이떄 처인성에서 '김윤후'가 살리타라는 몽고 장수를 사살하면서 전쟁이 커지게 됩니다. 그 백성들 덕분에 몽골은 군대를 철수하게 됩니다.

몽골의 3차 침입때에는 팔만대장경을 조판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구요 6차 침입까지 오게 됩니다.

이렇게 많은 침입을 거치며 원의 내정 간섭이 시작됩니다.

 

요약

 <원의 내정간섭>

1) 원은 일본 정벌을 하기 위해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하여 일본 정벌을 추진하였다.

2) 원이 고려의 3개 지역을 다스린다며 쌍성총관부(화주지역), 동녕부(서경), 탐라 총관부(제주도)를 설치하였다.

3) 고려의 국왕이 원의 공주와 결혼하면서 원의 부마국(사위 국가)이 되어 공녀,공물등을 바쳤다.

4) 몽고풍이 유행 하지만 원~명 교체기(원나라~명나라로 세력이 교체)때에 공민왕이 몽고풍을 금지, 정동행성 폐지, 친원세력 숙청 등으로 반원자주를 이루게 되면서 원의 내정간섭은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