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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동맹 이야기

나제동맹은 무엇인가요 나제동맹이란 삼국시대 서기 433년부터 서기 554년까지 121년동안 지속된 신라와 백제의 군사동맹으로, 고구려를 무찌르자는 의미로 함께 결합한 동맹이었다. 이 동맹은 장수왕 시절 전성기를 누렸던 고구려를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5~6세기 때에는 고구려가 워낙에 막강했던 나라였기 때문에 신라와 백제는 둘이라도 빨리 동맹맺어서 고구려를 좀 잠재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나제동맹은 427년, 평양 천도로 남진정책을 추진하는 고구려의 장수왕에게 대항하기 위해 433년 신라의 눌지 마립간과 백제의 비유왕이 서로 체결한게 시초이다. 신라의 '라', 백제의 '제'를 합쳐서 부르는 동맹이름이며, 두음법칙에 의해 '나제동맹'으로 불린다.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맞..

역사이야기 2020.08.25

박창화 화랑세기 이야기

'화랑'이란 신라시대에 있었던 청소년의 민간 수양단체인데, 문벌과 학식이 있고 외모가 단정한 사람만 뽑은 조직이다. 심신의 단련과 사회의 선도를 이념으로 하였다. 화랑세기는 이러한 신라시대 화랑을 다룬 서적으로, 신라 중대의 진골 역사학자 김대문이 저술하였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도 신라의 왕호에서부터 각 화랑의 생애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들이 인용되어있다. 그러나 이 책은 사라졌다. 통일신라 김대문이 쓴 이 책은 이미 역사적으로 '사라진' 책이다. 역사학자들도 그냥 막연히 화랑세기가 있었다는 것만 알았을 뿐, 직접적으로 보거나 그러진 못했다. 그런데.. 획기적인 일이 일어났다. 1989년에 화랑세기 필사본이 발견된 것. 화랑세기의 발견 1989년, 화랑세기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필사본이란 인쇄된 책..

역사이야기 2020.08.22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세조 이야기

세종대왕의 일생 모두들 익히 알다시피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그러나 이 훈민정음은 창제 논쟁이 좀 있었다고 한다. 최만리 등 집현전 학사는 한글창제를 반대했다고 한다. 한글을 만드는 것은 오랑캐(여진,몽고 등)나 하는 짓이라며 풍속을 바꾸는 일은 대신과 논의해야 하고 이두가 있으니 한글 표현이 가능하다고 그랬다. 그러나 세종 등 왕실인사는 한글 창제를 주도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 다수이니 쉬운 글자를 전파하자, 글을 알면 성리학 전수에 용이하다, 한글은 우리말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결국 정치세력이 문자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행위를 방지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님이 만든 훈민정음 덕분에! 어찌 됐건 백성들은 훈민정음 덕분에 좀 더 나아진 나라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역사이야기 2020.08.21

원나라의 고려 내정간섭

원나라의 고려 내정간섭 1231년 몽골의 고려 침공으로 시작된 30년간의 여몽전쟁 끝에 고려는 1259년 몽골과 강화를 맺어 1356년 공민왕의 반원 운동으로 고려가 원(몽골족이 세운 왕조)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때까지 원의 간섭을 받았다. 일반적으로는 고려가 몽골과 강화를 맺은 1259년에서 1356년까지 97년의 시기를 원 간섭기라고 한다. 무려 원나라가 고려를 97년 동안 간섭했던 것이다. 원 간섭기에 고려는 왕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원의 간섭을 받게 되어 자주성을 크게 잃었다. 우선 고려 영토 안에 쌍성 총 관부(1258년~1356년), 동녕부(1270년~1290년), 탐라 총 관부(1273년~1301년)등 원의 지방청이 설립되면서 영토의 일부를 상실했다. 쌍성 총관부는 철령 북쪽 지역을 지배하기 ..

역사이야기 2020.08.20

훈구파와 사림파

앞서 포스팅한 대로 세종의 둘째 아들 세조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단종을 물리치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그리고 예종이 즉위했고.. 그 후로 예종이 죽은 다음날 당대의 실력자 한명회를 장인으로 둔 성종이 즉위하였다. 그는 1469년부터 1494년까지 조선을 통치하였으며 고작 13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그는 경연을 다시 부활시켰다. 홍문관을 설치하여 신하가 왕을 가르치는 경연을 만들어서 소통을 위주로 하는 임금이 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 홍문관은 집현전을 계승한 것이다. 하지만 마냥 왕권이 약화된건 아니었다. 유교정치이념을 강화시키면서 1488년에는 유향소도 부활시켰다. 유향소는 성리학적 향촌 질서를 확립하기 위함이었다. ​ 불교를 폐단시키기 위해 억불정책을 내놨다. 세조 때 간경도감 설치했던걸 폐지하..

역사이야기 2020.08.19

정중부의 난(무신정변) 이야기

무신정변이란 고려 의종 24년, 1170년 8월에 고려의 무신들이 보현원에서 들고일어난 정변을 말한다. 1170년부터 1270년까지 무신들이 정권을 잡았으며 이 시기를 무신정권시기라고 부른다. 이들은 왜 정변을 일으켰을까 무신들이 왜 갑자기 보현원에서 정변을 일으켰을까. 그 이유는 당시 무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당시 고려는 문벌귀족사회였다. 문신들이 무신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사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고려의 문반,무반은 같은 양반 관리로 단일 관리체계 안에 일원적으로 편성되어 법적으로는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게 맞는 건데 실제로는 문반만이 귀족이 되어 정치권을 독차지했고 무반은 귀족 정권을 보호하는 호위병의 지위로만 지내야 했다. 당시 무신들은 전시과 체..

역사이야기 2020.08.18

최씨의 무신정권 이야기

숭문 천무가 강화되고, 무신들의 생활고가 심해지면서 이의방, 정중부를 중심으로 무신정변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무신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 무신정권 시기가 돌입되었다. 천민 출신이었던 사람(이의민)이 왕이 되기도 했으며 왕이 자주 바뀌면서 무신정권 시기에는 백성들이 참 힘들었다고 한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고.. ​ 오늘 알아볼 정권주체는 바로 최충헌이다. 최 씨의 무신정권 시작(무려 60년 동안...)이라고 볼 수 있는. 최충헌은 훗날 30년 동안 무신 집권을 했던 최우의 아버지였다. 그는 최 씨 정권을 세습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했었다. 오늘은 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최충헌 집권(1196년~1219년) 최씨무신정권(최충헌-최우-최항-최의)은 4대가 세습하였고 꽤 오랫동안 세습하였다고 한다. 무..

역사이야기 2020.08.17

조선 4대사화 이야기

조선 4대 사화는 무엇인가요? 앞서 이야기 했던 성종대 정치사에서 훈구파와 사림파가 생겼고 서로 대립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선의 4대 사화가 나타났는데.. 오늘 알아볼 주제는 바로 조선의 4대 사화다.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이렇게 4가지 이다. 무오사화(1498년) 1498년 김일손 등 사림파가 유자광 등 훈구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이다. 성종은 세조 때 권력을 장악한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사림파를 중앙정계로 진출시켰는 데 이에 집권세력이었던 훈구파는 사림파와 대립했다. 김종직의 제자였던 김일손이 춘추관의 사관으로 을 편찬할 때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세조의 왕권찬탈 비판기록)을 사초에 적었다. 사실 이건 김일손의 사초에서 "세조아들의 후궁을 겁탈했다"는 근거없는 내용이 발견되..

역사이야기 2020.08.16

원나라의 공주와 결혼한 충렬왕과 그 아들 충선왕 이야기

충렬왕은 누구인가요? 충렬왕(1274년~1298년, 1298년~1308년)은 원나라의 황실과 처음으로 결혼한 고려왕이었다. 모두들 알다시피 고려에는 원간섭기라는 암흑기가 있었는 데 이 때 원나라가 고려를 아주 수치스럽게 이용했다. 고려의 왕들을 전부 몽골에 들여보내서 강제로 몽골의 문화와 지식을 습득시키고 그들의 정체성을 몽골인으로 바꾸려고 했고 고려에 몽골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고려왕들을 강제로 몽골의 공주들과 혼인시켰다.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이었고 시다바리에 불과했다. 그 수치스러운 혼인을 했던 고려 최초의 왕이 바로 충렬왕이다. 몽골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의 딸 제국대장공주와 결혼을 했다. 그 때 충렬왕의 나이는 마흔이 다 되었다고 한다. 사실 충렬왕은 이 번이 첫 결혼이 아니..

역사이야기 2020.08.16

나제동맹 이야기

나제동맹은 무엇일까요? 나제 동맹이란 삼국시대 서기 433년부터 서기 554년까지 121년 동안 지속된 신라와 백제의 군사동맹으로, 고구려를 무찌르자는 의미로 함께 결합한 동맹이었다. 이 동맹은 장수왕 시절 전성기를 누렸던 고구려를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5~6세기 때에는 고구려가 워낙에 막강했던 나라였기 때문에 신라와 백제는 둘이라도 빨리 동맹 맺어서 고구려를 좀 잠재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나제 동맹은 427년, 평양 천도로 남진정책을 추진하는 고구려의 장수왕에게 대항하기 위해 433년 신라의 눌지 마립간과 백제의 비유왕이 서로 체결한 게 시초이다. 신라의 '라', 백제의 '제'를 합쳐서 부르는 동맹 이름이며, 두음법칙에 의해 '나제 동맹'으로 불린다.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관산..

역사이야기 2020.08.15